텍스트 - "흙"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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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살여울의 철교를 건넌다. '살여울!' 어떻게 정다운 이름이냐, 하고 숭은 철교 밑으로 흐르는 물을 들여다보았다. 아직도 여름 밤을 머금은 검은 물. 눈이 그 물줄기를 따라 올라가면, 초가을의 특색인 골안개가 뽀얗게 엉긴 것이 보인다.

촉촉하게 젖은 땅 위에, 들릴락말락한 소리를 내며 흘러가는 물 위에 꿈같이 덮인 뽀얀 안개, 그것은 자연의 아름다움 가운데 가장 인정다운 아름다움의 하나다.

살여울의 좌우 옆은 살여울 물을 대어서 된 논이다. 한 마지기에 넉 섬씩이나 나는 논이다. 본래는 그것은 풀이 무성한 벌판이었을 것이다. 혹은 하늘이 아니 보이는 수풀이었을 것이다.

사슴과 여우가 뛰노는 처녀림 속으로 살여울 맑은 물이 흘렀을 것이다. 지금도 흰 하늘이 고개라는 고개가 있지 아니하냐. 그 고개를 나서서야 비로소 흰 하늘을 바라보았다는 말이라고, 숭은 어려서 그 아버지에게 설명 받은 일이 있었다.

그것을 숭의 조상들이 - 아마 순의 조상들과 함께 개척한 것이다. 그 나무들을 다 찍어내고 나무뿌리를 파내고 살여울 물을 대느라고 보를 만들고, 그리고 그야말로 피와 땀을 섞어서 갈아놓은 것이다. 그 논에서 나는 쌀을 먹고, 숭의 조상과 순의 조상이 대대로 살고 즐기던 것이다. 순과 숭의 뼈나 살이나 피나 다 이 흙에서, 조상의 피땀을 섞은 이 흙에서 움 돋고 자라고 피어난 꽃이 아니냐.

그러나 이 논들은, 이제는 대부분이 숭이나 순의 집 것이 아니다. 무슨 회사, 무슨 은행, 무슨 조합, 무슨 농장으로 다 들어가고 말았다. 이제는 숭의 고향인 살여울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마치 뿌리를 끊긴 풀과 같이 되었다. 골안개 속에서 한가하게 평화롭게 울려오던 닭, 개, 짐승, 마소의 소리도 금년에 훨씬 줄었다. 수효만 준 것이 아니라, 그 소리에서는 한가함과 평화로움스러웠다.

차가 가는 대로, 숭은 가고 오는 산과 들과 촌락을 바라보았다. 알을 밴 벼와, 누렇게 고개를 숙인 조와 피와, 머리를 풀어헤치고 피를 흘리는 용사와 같은 수수를 보았다. 새벽 물을 길어 이고 가는 여자들을 보았다. 아침 햇빛이 물 묻은 물동이를 비치어 금빛을 발하였다. 물동이를 인 여자는 한 손으로 물동이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쳐내어버리고, 한 손으로는 짧은 적삼 밑으로 나오려는 젖을 가렸다.

기차가 우렁차게 달리는 소리를 듣고, 빨강댕이 아이들이 만세를 부르고 내달았다. 긴 장마를 겪은 초가집들은 마치 긴 여름 일을 치른 농부들 모양으로 기운이 빠져서 축 늘어졌다.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속이 썩은 모양으로 지붕의 이엉도 꺼멓게 썩었다. 그 집들 속에는 가난에 부대끼고, 벼룩 빈대에 부대끼고, 빚에 졸리고, 병에 졸리고, 희망을 빼앗긴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고 뭉개는 것이다.

정거장에를 왔다. 역장과 차장과 역부와 순사의 모자의 붉은 테와, 면장인 듯한 파나마 쓴 신사와, 서울로 가는 듯싶은 바스켓 든 여학생과, 그의 부모인 듯싶은 주름잡힌 내외와....

호각 소리가 나고 고동 소리가 나고....

큰 도회와 작은 정거장을 지나자, 숭은 차츰 배고픔을 깨달았다. 순이가 싸다 준 옥수수를 꺼내었다. 두 자루를 뜯어먹고는 좀 창피한 듯하여 도로 싸 놓았다.

경성역에 내린 때에는 숭은 꿈에서 깬 것 같았다. 바쁜 택시의 떼, 미친년 같은 버스, 장난감 같은 인력거, 얼음 가루를 팔팔 날리는 싸늘한 사람들.

숭은 전차를 타고 삼청동 윤 참판의 집으로 들어왔다. 방에 짐을 놓고 큰사랑에 가니, 윤 참판은 없고 웬 갓 쓴 사람만이 이삼 인이 앉았다. 작은사랑에 가니 윤 참판의 맏아들 인선도 없다. 돌아나오다가 찌개 뚝배기를 든 어멈을 하나 만났다.

"학생 서방님 오셨어요?"

하고 반갑게 인사를 하고는,

"맏서방님이 대단히 편찮으시답니다. 영감마님도 안에 계세요."

한다.

원체 일개 가정교사, 시골 학생 하나가 다녀왔기로 윤 참판집에 대하여서는 이웃집 고양이 하나 들어온 이상의 중요성이 있지 아니할 것이다. 더구나 맏아들 인선이 중병으로 죽을 지 살 지 모르는 이 판에, 온 집안이 난가가 된 이 판에 허숭이 따위가 왔대야 아랑곳할 사람은 밥 갖다주는 어멈 하나밖에 없다.

허숭은 어멈을 통하여 인선의 병 증상을 대개 들었다. 원래 인선은 체질이 허약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인선이가 난 지 몇 달이 아니 되어서 폐병으로 죽었다. 본래 폐병이 있는 이가 아이를 낳고는 죽은 것이었다. 인선은 그 어머니의 체질을 받아 살빛이 희고, 피부가 엷고, 여자같이 부드럽고, 가슴이 좁고, 몸이 가늘고 길었다. 미남자는 미남자이지마는 퍽 약하였다. 그러나 재주는 있어서 학교에서는 성적이 좋았다.

인선과는 반대로, 그 아내는 몸이 건강하고 또 육감적인 여자였다. 숭도 가끔 그를 보았거니와 눈웃음을 치고 교태가 있는 여자였다. 인선의 친구들은 인선이가 아내 때문에 몸이 늘 허약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던 것이 인선이가 금년에 석왕사에 피서를 갔다가 설사병을 얻어가지고 돌아와서부터는 신열이 나고, 소화 불량이 되고 잠을 못 잤다. 윤 참판은 이것을 성화하여 의사도 불러대고 한방의도 불러대었으나 병은 낫지 아니하였다.

그러다가 약 일주일 전에 어느 유명하다는 한방의를 불러다가 보인 결과, 녹용과 무슨 뽕나무 뿌리 같은 약과를 달여 먹였다. 이것을 먹고 병자는 전신이 뻘겋게 달고 정신을 잃고 헛소리를 하고 웃고 날뛰었다. 그러기를 일 주야나 한 뒤에 의사가 와서 주사를 놓고 약을 먹여서 잠이 들었으나, 그로부터 영 말도 못하고 먹지도 못한다고 한다.

지금도 사랑에는 갓 쓰고 때묻은 두루마기 입은 무슨 진사, 무슨 사과 하는 한방의가 이삼 인이나 모여 앉아서, 서로 금목수화토 오행을 토론하고 갑을병정의 육갑을 주장하여 병인 머리 둘 방향을 날을 따라 고치고, 약 달이는 물을, 혹은 동쪽에서, 혹은 서쪽에서 방위를 가리어 길어오게 하고, 혹은 약물을 붓는 시간을 묘시니 진시니 하여 큰 문제나 되는 듯이 논쟁을 하였다.

약을 달일 때에도 제가 처방한 것은 제가 지키고 앉아서 달이고, 그 곁에는 심부름하는 계집애 종이 시중들고 섰었다. 갓 쓴 의원은 그 계집애더러 담배를 붙여들이라고 연해 명령하였다.

인선은 윤 참판의 맏아들일 뿐더러 어려서 어미 잃은 아들이요, 또 허약한 아들이기 때문에 특별히 맘에 늘 두었다. 더구나 윤 참판이 나이 환갑을 지나면서부터는 재산에 관한 사무, 가사에 관한 사무를 거의 다 인선에게 맡기고, 자기는 다만 최고 권위자로 비토권만 가지고 있었다. 인선도 다른 부자집 아들 모양으로 허랑방탕하지 않고 적어도 돈 아낄 줄을 알았다. 윤 참판에게는 그 아들의 돈 아낄 줄 아는 것이 가장 기쁘고 믿음성 있는 일이었다.

이러하던 인선이가 앓는 것을 보고는, 윤 참판은 화를 내어 조석도 잘 아니 먹고 담배와 술만 마시었다.

허숭이가 돌아온 이튿날 아침에, 큰사랑에 가서 윤 참판을 만나 절을 하였다. 윤 참판은,

"오, 댕겨왔냐."

한마디를 하고는 돌아앉은 갓 쓴 의원들에게,

"어디 그 약이 효험이 있나."

하고 화를 내었다.

또 의원들간에는 상초가 어떻고 하초가 어떻고, 명문이 어떻고 수기니 화기니 하는, 말하는 자기들도 잘 알지 못하는 토론이 시작되었다.

마루의 약탕관에서는 꼬르륵꼬르륵하는 소리가 나고, 덮은 종이를 통하여 야릇한 향기를 가진 김이 올랐다.

날은 맑고 더웠다.

인삼도 녹용도 쓸데없이, 허숭이가 온 지 닷새만의 새벽에 인선은 마침내 죽어버렸다. 인선이가 위태하단 말을 듣고 초저녁부터 친척들이 모여들어서 안팎이 웅성웅성하였다. 그 중에는 참판의 삼종형이요, 사회에 명망이 높은 한은 선생이라고 세상이 일컫는 이도 오고, 또 죽은 이의 재종 삼종 되는, 혹은 일본 유학도 하고, 혹은 구미 유학도 한 젊은이들도 오고, 또 숭이 알지 못하는 사내들과 부인들도 왔다.

또 허숭과는 고등보통학교 선배 동창이요, 지금 경성제대 법과에 다니는 김갑진이라는 학생도 왔다. 갑진은 칠조약 때에 관계 있어 남작을 받은 김남규의 아들로서 보통학교 시대부터 교만한 수재로 이름이 높았다.

다만 그 아버지 남규가 주색과 투기사업으로 돈을 다 깝살리고, 마침내는 파산을 당하고 또 사기로 몰려 불기소는 되었으나, 남작 예우는 정지되고 죽었기 때문에 갑진은 가난하고 또 습작도 못하였을 뿐이다. 그는 아버지와 윤 참판과 막역한 친구이던 인연으로 윤 참판이 학비를 대어서 지금까지 공부를 시키고, 그러한 까닭으로 마치 친척이나 다름없이 세배 때나 기타 무슨 일이 있을 때에는 윤 참판 집안에도 출입하였다.

인선이가 죽은 뒤로, 사람들의 시선 - 부러워하는 듯한 시선은 윤 참판의 딸 정선에게로 쏠렸다. 오빠의 죽음을 슬퍼하는 정선의 모양은 더욱 아름다움을 더한 듯하였다.

정선은 윤 참판의 둘째 아내의 몸에서 난 딸이다. 정선의 어머니는 윤 참판이 전라감사로 갔을 때에 도내에 제일 부호라는 말을 듣던 남원 김 승지의 딸에게 장가들어 얻은 아내로, 인물이 아름답기로, 재산을 많이 가져오기로 유명한 부인이다. 그때 서울에서는 윤 참판이 돈을 탐내어서 시골 상놈의 딸에게 장가든 것이라고 비웃었거니와, 그 비웃음은 사실에 가까왔다.

이 김씨 부인은 만석을 가져왔다고도 하고, 오천 석을 가져왔다고도 하거니와, 어쨌든 윤 참판이 전라감사 이태에 약 만석의 재산이 붙은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 중에는 뇌물 받은 것, 학정한 것도 있겠지마는, 적어도 그 중에 삼분지 이는 김씨 부인이 가지고 온 것이었다.

김씨 부인에게 장가를 듦으로, 또는 전라감사를 다녀옴으로부터 윤 참판은 일약 장안에서 부명을 듣게 되었고, 세상이 바뀌고 호남 철도가 개통됨으로부터는 곡가와 지가가 몇갑절을 올라서, 윤 참판의 재산은 무섭게 늘었다.

김씨 부인은 그러나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아놓고 아직 사십이 다 못되어서 죽었다. 아들은 얼마 아니하여 죽고, 그의 유일한 혈육으로 남은 것이 정선이다.

정선은 그 모습이 천연 그 어머니를 닮았다고 한다.

키가 호리호리하고 살이 희고 부드럽고, 그러면서도 죽은 오라버니와 같이 허약한 빛이 없고, 부드러운 중에도 단단한 맛이 있었다. 코가 너무 오똑하고 눈에 젖은 빛을 띠어 여염집 처녀로는 너무 애교가 있는 것이 흠이면 흠이랄까.

정선은 숙명에서도 두어 번 수석을 한 일이 있고, 이화 전문학교 음악과에 들어간 뒤에도 미인, 수재의 평이 높다. 천만 장자요, 양반의 따님이었다, 미인이었다, 수재였다. 그 어머니가 친정에서 가지고 온 재산의, 적어도 한 부분은 상속할 수 있다는 정론이 있는 사람이었다.

아들 가진 사람, 재주 있는 청년의 시선이 그리로 모일 것은 물론인데다가 이제 윤 참판의 맏아들 인선이 죽으니, 윤 참판의 평소의 성미로 보아서 이 딸의 남편이 될 사위가 윤 참판의 작은아들 예선이 자랄 때까지 윤 참판 집에 채를 잡을 것이 분명한 줄을 미루어 알 수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정선의 몸으로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누가 이러한 정선의 남편이 되는 행운의 제비를 뽑을 것인가 - 사람들에게는 이런 것이 중대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