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 - "꿈"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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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신의 집에는 이미 평화는 없었다. 어른들의 얼굴에 매양 근심하는 빛이 있으니 아이들의 얼굴에는 화기가 없었다. 닭, 개, 짐승까지도 풀이 죽고 집까지도 무슨 그늘에 싸인 듯하였다.

조신은 어찌할까 그 마음을 진정치 못한 채로 찜찜하게 하루 이틀을 보내고 있었다.

추수도 다 끝나고 높은 산에는 단풍이 들었다. 콩에 배불린 꿩들이 살찐 몸으로 무겁게 날고 있었다. 매 사냥꾼 활 사냥꾼들이 다니기 시작하고, 산촌 집들 옆에는 겨울에 때일 나뭇더미가 탐스럽게 쌓여 있었다. 이제 얼마 아니하여 눈이 와서 덮이면 사람들은 뜨뜻이 불을 지피고 술과 떡에 배를 불리면서 편안하게 재미있는 과동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신의 마음에는 편안한 것이 없었다. 곳간에 쌓인 나락 섬에서는 평목의 팔이 쑥 나오는 것 같고, 나뭇더미에서도 평목의 큰 입이 혀를 빼어 물고 내미는 것 같았다. 게다가 모례가 언제 어느 때에 시퍼런 칼을 빼어들고 말을 달려 들어올는지도 몰라서 밤 바람에 굴그는 낙엽 소리에도 귀가 쭝긋하였다.

‘이 자리를 떠서 어디 다른 데로 가서 숨어야 할 터인데. ' 조신은 날마다 이런 생각을 하기는 하면서도 어디로 어떻게 갈 것인지 궁리가 나지 아니하였다. 죄를 지은 사람에게는 천지도 좁았다.

추워지기 전에 하루라도 일찌기 떠나야 된다 된다 하면서 머뭇머뭇하는 동안에 첫눈이 내렸다. 조신은 식전에 일어나 만산 편야로 하얗게 눈이 덮인 것을 보고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무신 일이 있어서 도망을 가더라도 눈 위에 발자국이 남을 것이 무서웠다.

이날 미력이가 아랫 동네에 놀러 갔다가 돌아와서 조신의 가슴을 놀라게 하는 소식을 전하였다. 그것은 이 고을 원님이 서울서 온 귀한 손님을 위하여 이 골짜기에 사냥을 온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큰 사냥이면 매도 있고 활도 쓰고 또 굴에 불을 때어서 곰이나 너구리나 여우도 잡는 것이 예사다. 수십 명 일행이 흔히 하루 이틀을 묵으면서 많은 짐승을 잡아가지고야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나 그뿐인가, 동네 사람들은 모두 모리꾼으로 나서서 산에 있는 굴은 말할 것도 없고 바위 밑까지도 샅샅이 뒤지는 것이었다. 그리 되면 저 평목의 시신이 필시 드러날 것이요, 그것이 드러난다면 원님이 반드시 이일을 그냥 두지 아니하고 범인을 찾을 것이다.

‘그것을 묻어버릴 것을. '하고 조신은 뉘우쳤다. 묻어야 묻어야 하면서도 무서워서 못한 지가 벌써 한 달이나 되었다. 비록 선선한 가을 일기라 하더라도 한 달이나 묵은 송장이 온전할 리가 없었다. 필시 썩어서 는적는적 손을 대일 수 없이 되었거나 혹은 여우가 뜯어먹어 더욱 보기 흉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조신은 평목의 시체 처치를 못한 채 오늘날에 이르렀다.

조신은 앞이 캄캄해짐을 느꼈다. 아내와 아이들이 제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양이 아마 낯색이 변한 것이라고 짐작하고 짐짓 태연한 모양을 한다는 것이 이런 소리가 되어 나왔다. "망할 녀석들! 사냥은 무슨 주릴할 사냥을 나와. 짐승 죽이는 것을 살생이 아닌가. 지옥에를 갈 녀석들!"

이 말에 달례는 눈을 크게 뜨고 조신을 바라보았다. 사람을 죽인 사람이 어떻게 저런 소리를 하나 하는 것 같았다.

조신도 아니할 소리를 하였다 하고 가슴이 섬뜨레하였다. 저도 그런 소리를 하려는 생각이 없이 어찌된 일인지 그런 소리가 나온 것이었다. 무슨 신의 힘이 저로 하여금 그런 소리를 하게 한 것 같아서 조신은 등골에 얼음물을 퍼붓는 듯함을 느꼈다.

그러나 이제 평목의 시체를 처치할 수는 없었다. 우선 눈이 오지 아니하였나. 발자국을 어찌하나. 오늘 볕이 나서 눈만 다 녹인다면 밤에 아무런 일이 있더라도 평목의 시신을 묻어버리리라고 마음에 작정하였다.

그러나 물 길러 나갔던 달보고는 또 하나 이상한 소식을 전하였다.

"내가 물을 긷고 있는데, 웬 사람이 말을 타고 오겠지 - 자주빛 긴 옷을 입고. 이렇게 이렇게 이상하게 생긴 갓을 쓰고. 그리고 아주 잘생긴 사람야. 이렇게 이렇게 수염이 나고. 그 사람이 우물 옆으로 지나가더니 몇 걸음 가서 되돌아서 오더니, 말에서 내리더니 나를 한참이나 물끄러미 보더니 아가 나 물 좀 다우 그래요. 그래서 바가지로 물을 떠주니까 두어 모금 마시고는 너?"하고 숨결이 커진다.

달보고는 아버지의 수상한 서슬에 놀란 듯이 입을 다문 채로 고개를 두어 번 까닥까닥한다.

"그래, 그 사람이 젊은 사람이든?"

이번에는 달례가 묻는다.

"나이를 잘 모르겠어. 수염을 보면 나이가 많은 것도 같은데 얼굴을 보면 아주 젊은 사람 같아요."

달보고는 그 붉은 옷 입은 사람을 이렇게 그렸다. 그리고는 부끄러운 듯이 왼편 손을 펴서 파르스름한 옥고리 하나를 내어놓으며 수줍은 듯이 이렇게 설명하였다.

"그 사람이 물을 받아 먹고 돌아 설 때에 웬일인지 띠의 달렸던 이 옥고리가 땅에 떨어지겠지. 그러니깐 그 사람이 깜짝 놀라서, 꺼꾸버서 이것을 줍더니, 잠깐 무엇을 생각하더니, 아따 물값이다, 하고 나를 주어요."

"왜 남의 사내헌테서 그런 것을 받아, 커다란 계집애가?"하고 달례가 달보고를 노려본다.

"싫다고 해도 자꾸만 주는걸.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니 이것은 분명히 네 것이라고 그러면서. "하고 달보고는 아주 어색하게 변명을 한다.

조신은 까닭 모르게 마음이 설렌다. 도무지 수상하였다. 이런 때에는 억지로라도 성을 내는 것이 마음을 진정하는 길일 것 같았다. 그래서 조신은 커다란 손으로 그 옥고리를 집어서 문 밖으로 홱 내어던지면서, "그놈이 어떤 놈인데 이런 것으로 남의 계집애를 후려. "하였다.

옥고리는 공중으로 날아서 뜰 앞 바윗돌에 떨어져서 째깍 소리를 내고 서너 조각으로 깨어졌다.

달보고는 손으로 두 눈을 가리우고 방바닥에 엎드려서 울었다.

달례는 눈에 눈물이 어리며, "울지 마. 엄마가 그보다 더 좋은 옥고리 줄께 울지 마. "하고 일어나서 시렁에 얹었던 상자를 내려 하얀 옥고리 하나를 꺼내어 달보고에게 주었다.

달보고는 "싫여, 싫여. " 하고 그것을 받지 아니하였다.

얼마 후에 관인이 와서 조신의 집을 서울 손님의 사처로 정하였으니 제일 좋은 방 하나를 깨끗이 치울 것과 따라오는 하인들이 묵을 방도 하나 치우라는 분부를 전하였다.

조신은 마음에는 찜찜하나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사랑을 치웠다. 이것은 창을 열면 눈에 덮인 태백산이 바라보이고 강 한 굽이조차 눈에 들어오는 방이었다. 절에서 자라난 조신은 경치를 사랑하였다. 그는 이 방에서 평생을 즐겁게 지내려 하였었다. 그러나 평목이가 이 방에서 죽어나간 뒤로는 이 방은 조신에게는 가장 싫고 무서운 방이 되어서 그 앞으로 지나가기도 머리가 쭈볏거렸다.

조신은 사랑방 문을 열 때에 연해 헛기침을 하고 진언을 염하였다. 문을 열면 그 속에서 평목이가 혀를 빼어 물고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러나 정작 문을 열고 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써늘한 기운이 비인 방 냄새와 함께 훅 내뿜을 뿐이었다.

조신은 방을 떨고 훔쳤다. 깨끗한 돗자리를 깔고 방석을 깔았다. 목침을 찾다가 문득 그것이 평목이가 베었던 것임을 생각하였다.

서울 손님이라는 것이 어떤 귀인인가. 혹시나 내 집에 복이 될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설마, 설마. "하고 조신은 중얼거렸다. 설마 모례야 올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달보고를 유심히 보더라는 것, 옥고리를 준 것, 하필 이집으로 사처를 정한다는 것들을 생각하면 그것이 모례인 것도 같았다.

‘만일 그것이 모례면 어찌하나. ' 조신은 멍하니 태백산 쪽을 바라보았다. 날은 아직도 흐리고 산에는 거무스름한 안개가 있다.

‘모례가 십칠 년 전 일을 아직도 생각하고 있을까. 더구나 귀한 사람이 그것을 오래 두고 생각할라고. 벌써 다른 아내를 얻어서 아들딸 낳고 살 것이다. 설령 아직도 달례를 생각하기로소니 우리집에 달례가 있는 줄을 알 까닭이 없다. 달보고가 하도 어미를 닮았으니까 혹시 우리집이 달례의 집인가 의심할까. 모례가 나를 본 일은 없다. 누가 그에게 내 용모 파기를 하였을까. 내 찌그러진 얼굴, 비뚤어진 코 - 그러나 세상에 그렇게 생긴 사람이 나 하나밖에 없으란 법은 없다. '

조신의 생각은 끝이 없다. 그러고도 무엇이 뒷덜미를 내려짚는 듯이 절박한 것 같다.

조신은 무엇을 찾는 듯이 방안을 휘 둘러보았다.

‘앗, 저 바랑, 저 바랑?'하고 조신은 크게 눈을 떴다. 벽장문이 방싯 열리고 그 속에 집어넣었던 평목의 바랑이 삐죽이 내다보고 있다.

조신의 머리카락은 모두 하늘로 뻗었다. 저것을 처치를 아니하였고나 하고 조신은 발을 구르고 싶었다.

조신은 얼껼덜껼에 벽장문을 홱 잡아젖히고 평목의 바랑을 왈칵 나꾸채었다. 그리고는 구렁이나 손에 잡힌 것같이 손을 떼었다. 바랑은 덜컥하고 방바닥에 떨어져서 흔들렸다. 척척 이긴 굵은 벼로 지은 바랑이다. 평목의 등에 업혀서 산천을 두루 돌고 촌락으로 들락날락하던 바랑이다.

조신은 이윽히 이 말없는 바랑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바랑은 아무 말이 없었으나 그 속에는 많은 말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이것이 벽장에서 떨어질 때에 떨거덕한 것은 평목의 밥과 국과 반찬과 물을 먹기에 몇 십 년을 쓰던 바리때요, 버썩 하는 소리를 내인 것은 평목이 어느 절에 들어가면 꺼내어 입던 가사 장삼일 것과 그 밖에 바늘과 실과 칼과 이런 도구가 들어 있을 것.

그러나 조신의 생각에는 평목의 바랑 속에는 이런 으례 있을 것 외에 무서운 무엇이 나올 것만 같았다. 조신은 바랑을 여는 대신에 그 끈을 더욱 꼭 졸라매었다. 무서운 것이 나오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조신은 그 바랑을 번쩍 들어서 벽장에 들여쏘았다. 침침한 벽장 속에 바랑은 야릇한 소리를 내고 들어가 굴렀다. 조신의 귀에는 그것이 바랑이 벽에 부딪치는 소리만 같지는 아니하였다. 분명 무슨 이상한 소리가 그 속에 있었다. 그 이상한 소리는 잉하게 귀에 묻어서 떨어지지 아니하였고, 조신의 손과 팔에도 바랑을 집어넣을 때에 무엇이 물컥하고 뜨뜻미지근하던 것이 배어 있는 것 같았다.

‘아아 모두 죄를 무서워하는 내 마음의 조화다. 있기는 무엇이 있어. '하고 조신은 제 마음을 든든하게 먹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내 마음 이란 것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였다.

조신이 서울 손님의 사처 방을 다 치우고 나서 지향할 수 없는 마음을 가지고 고민하고 있을 즈음에 조신의 집을 향하고 올라오는 사오 인의 말 탄 사람과 수십 명의 사람의 떼를 보았다. 그들 중에는 동네 백성들도 섞여 있었다.

말 탄 사람들은 조신의 집 앞에서 말을 내렸다. 관인이 내달아 일변 주인을 찾고 일변 말을 나무에 매었다.

조신은 떨리는 가슴으로 나서서 귀인들 앞에 오른편 무릎을 꿇고 절을 하였다.

"어, 깨끗한 집이로군, 근농가로군!"

코밑에 여덟 팔자 수염이 난 귀인이 조신의 집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이분이 아마 이 고을 원인가 하고 조신은 생각하였다.

원은 집 모양을 휘 돌아본 뒤에, 고개를 돌려 한 걸음 뒤에선 귀인을 보면서, "이번 사냥에 네 집에서 이 손님하고 하루이틀 묵어 가겠으니 각별히 거행하렸다. "하고 위엄있게 말하였다.

"예이. 누추한 곳에 귀인이 왕림하시니 황송하오. 벽촌이라 찬수는 없사오나 정성껏 거행하오리다. "하고 조신은 또한번 무릎을 꿇었다.

"어디 방을 좀 볼까?"하는 원의 말에 조신은 황망하게 사랑문을 열어젖혔다. 원과 손님은 방안을 휘 둘러보고, "어, 정갈한 방이로군!"하고 방 칭찬을 하고는, "이봐라, 네 그 부담을 방에 들여라. "하여 짐을 들이도록 분부하고 손님을 향하여서, "아손, 어찌하시려오? 방에 들어가 잠깐 쉬시려오, 그냥 산으로 가시려오?"하고 의향을 묻는다.

손님은 그 옥으로 깎은 듯한 얼굴에 구슬같이 맑은 눈을 한번 감았다 뜨면서, "해도 늦었으나 먼저 사냥을 합시다. "한다.

"그러시지, 다행히 사슴이라도 한 마리 잡으면 저녁 술안주가 될 것이니까?"하고 원은 아래턱의 긴 수염을 흔들며 허허하고 소리를 내어서 웃는다.

귀인들은 소매 넓은 붉은 우틔를 벗고 좁은 행전을 무릎까지 올려 신고 옆에 오동집에 금으로 아로새긴 칼을 차고 어깨에 활과 전통을 메고, 머리는 자주 박두를 쓰고 나섰다. 관인들은 창을 들고 모리꾼들은 손에 작대를 들고 매받치는 팔목에 매를 받고 산을 향하여서 길을 떠났다. 조신은 산길을 잘 타는 사람이라는 동네 사람의 추천을 받아서 앞잡이를 하라는 영광스러운 분부를 받았다. 사냥개는 없었으나 동네 개들이 제 주인을 따라서 좋아라고 꼬리를 치며 달리고, 미력이를 비롯하여 동네 아이놈들도 몽둥이 하나씩을 들고 무서운 듯이 멀찌기 따라오며 자깔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