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 - "무명"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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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에는 민 외에 강이라고 하는 키 커다랗고 건장한 청년 하나가 아랫배에 붕대를 감고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나중에 들으니 그는 어떤 신문 지국 기자로서, 과부 며느리와 추한 관계가 있다는 부자 하나를 공갈을 해서 돈 천육백 원을 빼앗아 먹은 죄로 붙들려온 사람이라고 하며, 대단히 성미가 괄괄하고 비위에 거슬리는 일은 참지를 못하는 사람이 되어서, 가끔 윤과 정을 몰아세웠다.

윤이 민을 못 견디게 굴면 반드시 윤을 책망하였고, 정이 윤을 못 견디게 굴면 또 정을 몰아세웠다. 정과 윤은 강을 향하여 이를 갈았으나 강은 두 사람을 깍정이같이 멸시하였다. 윤 다음에 정이 눕고 정의 곁에 강이 눕고, 강 다음에 내가 눕게 된 관계로 강과 정과가 충돌할 기회가 자연 많아졌다. 강은 전문학교까지 졸업한 사람이기 때문에 지식이 상당하여서 정이 아는 체하는때마다 사정없이 오금을 받았다.

"어디서 한 마디 두 마디 주워들은 소리를 가지고 아는 체하고 지절대오? 시골 구석에서 무식한 농민들 속여먹던 버르장머리를 아무 데서나 하려 들어? 싱글벙글하는 당신 상판대기에 나는 거짓말장이오 하고 뚜렷이 써 붙였어. 인젠 낫살도 마흔댓 살 먹었으니 죽기 전에 사람 구실을 좀 해보지.

댁이 의학은 무슨 의학을 아노라고 걸핏하면 남에게 약 처방을 하오? 다른 사기는 다 해 먹더라도 잘 알지도 못하는 의원노릇을랑 아예 말어. 침도 아노라, 한방의도 양의도 아노라, 그렇게 아는 사람이 어디 있어? 당신이 그 따위로 사람을 많이 속여먹었으니 배때기가 온전할 수가 있나? 욕심은 많아서 한끼에 두 사람 세 사람 먹을 것을 처먹고는 약을 처먹어, 물을 처먹어, 그리그놈의 냄새에 곁에 사람이 살 수가 있나?

그렇게 처먹고 밥주머니가 늘어나지 않어? 게다가 한다는 소리가 밤낮 거짓말 - 싱글벙글 웃기는 왜 웃어? 누가 이쁘다는 게야? 알콜 솜으로 문지르기만 하면 상판대기가 예뻐지는 줄 아슈? 그 알콜 솜도 나랏돈이오. 당신네 집에서 언제 제 돈 가지고 알콜 한병 사봤어? 벌써 꼬락서니가 생전 사람 구실 해보기는 틀렸소마는, 제발 나 보는 데서마는 그 주둥아리 좀 닫치고 있어요."

강은 자기보다 근 이십 년이나 나이 많은 정을 이렇게 몰아세웠다.

한번은 점심 때에 자반 며루치 한 그릇이 들어왔다. 이것은 온 방안에 있는 사람들이 골고루 나누어 먹으라는 것이다. 며루치야 성한 것은 한 개도 없고, 꼬랑지, 대가리 모두 부스러진 것 뿐이요, 게다가 짚 검불이며, 막대기며, 별의별 것이 다 섞여 있는 것들이나, 그래도 감옥에서는 한 주일에 한 번이나 두 주일에 한 번밖에는 못 얻어먹는 별미어서, 이러한 반찬이 들어오는 날은 모두들 생일이나 명절을 당한 것처럼 기뻐하였다.

정은 여전히 밥 받아들이는 일을 맡았기 때문에 이 며루치 그릇을 받아서 젓가락으로 뒤적거리며 살이 많은 것은 골라서 제 그릇에 먼저 덜어놓고, 대가리와 꼬랑지만을 다른 네 사람을 위하여 내어놓았다. 내가 보기에도 정이 가진 것은 절반은 다 못되어도 삼분의 일은 훨씬 넘었다. 그러나 정의 눈에는 그것이 며루치 전체의 오분지 일로 보인 모양이었다.

나는 강의 입에서 반드시 벼락이 내릴 것을 예기하고, 그것을 완화해볼 양으로 정더러,

"여보시오, 며루치가 고르게 분배되지 않은 모양이니 다시 분배를 하시오."

하였으나, 정은 자기 그릇에 담았던 며루치 속에서 그 중 맛 없을 만한 것 서너 개를 골라서 이쪽 그릇에 덜어놓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대단히 맛나는 듯이 제 그릇의 며루치를 집어먹는데, 그것도 그 중 맛나 보이는 것을 골라서 먼저 먹었다.

민은 아무 욕심도 없는 듯이 쌀 뜨물 같은 미음을 한 모금 마시고는 놓고, 또 한 모금 마시고는 놓고 할 뿐이요, 며루치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으나, 윤은 못마땅한 듯이 연해 정을 곁눈으로 흘겨보면서 그래도 며루치를 골라 먹고 있었다. 강만은 며루치에는 젓가락을 대어보지도 않고, 조밥 한 덩이를 다 먹고 나더니마는 며루치 그릇을 들어서 정의 그릇에 쏟아버렸다. 나도 웬일인지 며루치에는 젓가락을 대지 아니하였다.

정은 고개를 번쩍 들어 강을 바라보며,

"왜, 며루치 좋아 안하셔요?"

"우린 좋아 아니해요. 두었다 저녁에 자시오."

하고 강은 아무 말 없이 물을 먹고는 제자리에 가서 드러누웠다. 나는 강의 속에 무슨 생각이 났는지 몰라 우습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였다.

정은 역시 강의 속이 무서운 모양이었으나, 다섯 사람이 먹을 며루치를 게다가 소금 절반이라고 할 만한 며루치를 거진 다 먹고 조금 남은 것을 저녁에 먹는다고 라디에이터 밑에 감추어 두었다.

정은 대단히 만족한 듯이 싱글벙글 웃으며 제자리에 와 드러누웠다. 그러더니 얼마 아니해서 코를 골았다. 식곤증이 난 모양이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아무리 위장이 튼튼한 장정 일꾼이라도 자반 며루치 한 사발을 다 먹고 무사히 내릴 리는 없을 것 같았다.

강도 그 눈치를 알았는지 배에 붕대를 끌러놓고 부채로 수술한 자리에 바람을 넣으면서 픽픽 웃고 앉았더니, 문득 일어나서 물 주전자 있는 자리에 와서 그것을 들어 흔들어보고 그리고는 뚜껑을 열어보았다. 강은 나와 윤에게 물을 한 잔씩 따라서 권하고, 그리고는 자기가 두 보시기나 마시고 그 나머지로는 수건을 빨아서 제 배를 훔치고, 그리고는 물 한 방울도 없는 주전자를 마룻바닥에 내어던지듯이 덜컥 놓고는 제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강이 하는 양을 보고 앉았던 윤은,

"강 선생, 그것 잘 하셨소. 흥, 이제 잠만 깨면 목구멍에 불이 일어날 것이닝게."

하고는 주전자 뚜껑을 열어 물이 한 방울도 아니 남은 것을 보고 제자리에 돌아와 앉는다.

정은 숨이 막힐 듯이 코를 골더니 한 시간쯤 지나서 눈을 번쩍 뜨며 일어나는 길로 주전자 앞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주전자에 물이 한 방울도 없는 것을 보고 와락 화를 내어 주전자를 내어동댕이를 치고 윤을 흘겨보면서,

"그래, 물을 한 방울도 안 남기고 자신단 말이오? 내가 아까 물이 있는 걸 보고 잤는데 - 그렇게 남의 생각을 아니하고 제 욕심만 채우니겐두루 밤낮 똥질을 하지."

하고 트집을 잡는다.

"뉘가 할 소리야? 그게 춘치자명이라는 것이어."

하고 윤은 점잖을 뺀다.

"물은 내가 다 먹었소."

하고 강이 나앉는다.

"며루치는 댁이 다 먹었으니, 우리는 물로나 배를 채워야 아니하오? 며루치도 혼자 다 먹고 물도 혼자 다 먹었으면 속이 시원하겠소?"

정은 아무 말도 아니하였다. 그러나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인 모양이었다. 그는 누웠다 앉았다 도무지 자리를 잡지 못하였다. 그가 가끔 일어나서 철창으로 복도를 바라보는 것은 간병부더러 물을 청하려는 것인 듯하였다.

그러나 간병부는 어디 갔는지 좀체로 보이지 아니하였고, 그 동안에 간수와 부장이 두어 번 지나갔으나 차마 물 달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 동안이 퍽 오래 지난 것 같았다. 이때에 키 작은 간병부가 왔다. 정은 주전자를 들고 일어나서 창으로 마주 가며,

"햐꾸고오상, 여기 물 좀 주세요? 도무지 무엇을 먹지 못하니깐두루 헛헛증이 나고, 목이 말라서. 물이 한 방울도 없구먼요."

하고 얼굴 전체가 웃음이 되어 아첨하는 빛을 보인다.

"여기를 어딘 줄 아슈? 감옥살이를 일년이나 해도 감옥소 규칙도 몰라? 저녁 때 아니고 무슨 물이 있단 말이오?"

백호는 이렇게 웃어버린다. 정은 주전자를 높이 들어 흔들며,

"그러니까 청이지요. 목마른 사람에게 물 한잔 주는 것도 급수공덕이라는 말을 못 들으셨어요? 한 잔만 주세요. 수통에서 얼른 길어오면 안되오?"

"그렇게 배도 곯아보고, 목도 좀 말라보아야 합니다. 남의 돈 공으로 먹으려다가 붙들려왔으면 그만한 고생도 안해?"

하고 말하다가 간수 오는 것을 봄인지, 간병부는 얼른 가버리고 만다. 정은 머쓱해서 주전자를 방바닥에 놓고 자리에 와 앉는다. 옆방 장질부사 환자의 간호를 하고 있는 키 큰 간병부가 통행 금지하는 줄 저편에서 고개를 갸웃하여 우리들이 있는 방을 들여다보며,

"정 주사, 물 좀 줄까? 얼음 냉수 좀 줄까?"

하고 환자 머리 식히는 얼음 주머니에 넣던 얼음 조각을 한 줌 들어 보인다. 정은 벌떡 일어나서 창 밑으로 가며,

"규꼬오상, 그거 한 덩이만 던져주슈."

하고 손을 내민다.

"이건 왜 이래? 장질부사 무섭지 않어? 내 손에 장질부사균이 득시글득시글한다나."

"아따, 그 소독물에 좀 씻어서 한 덩어리만 던져주세요. 아주 목이 타는 것 같구료. 그렇찮으면 이 주전자에다가 물 한국이만 넣어주세요. 아주 가슴에 불이 인다니깐."

"아까 들으니까 며루치를 혼자 자시는 모양입디다그려. 그걸 그냥 새겨야지 물을 먹으면 다 오줌으로 나가지 않우? 그냥 새겨야 얼굴이 반드르해진단 말야."

그리고는 키 큰 간병부는 새끼손가락만한 얼음 한 덩이를 정을 향하고 집어던졌으나, 그것이 하필 쇠 창살에 맞고 복도에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리고는 키 큰 간병부는 얼음 주머니를 가지고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정은 제자리에 돌아와 고개를 숙이고 앉았다.

"소금을 자슈. 체한 데는 소금을 먹어야 하는 게야."

이것은 강의 처방이었다. 정은 원망스러운 듯이 강을 한번 힐끔 돌아보고는 입맛을 다셨다.

"저 타구에 물이 좀 있지 않아? 양추물은 남의 세 갑절 쓰지? 그게 저 타구에 있지 않아? 그거라도 마시지."

이것은 윤의 말이었다.

"아까 짠 것을 너무 자십디다. 속도 좋지 않은 이가 그렇게 자시고 무사할 리가 있소?"

하고 민이 자기 머리맡에 놓았던 반쯤 남은 우유 병을 정에게 주었다.

"이거라도 자셔 보슈."

"고맙습니다. 그저 병환이 하루 바삐 나으시고 무죄가 되어서 나갑소사."

하고 정은 정말 합장하여 민에게 절을 하고 나서 그 우유 병을 단숨에 들이켰다.

"사람들이 그래서는 못쓰는 것이오. 남을 위할 줄 알아야 쓰는 게지. 남을 괴롭게 하고 비웃고 하면 천벌을 받는 법이오. 하느님이 다 내려다보시고 계시거든!"

정은 이렇게 한바탕 설교를 하고 다시는 물 얻어먹을 생각도 못하고 누워버리고 말았다.

"당신이 사람은 아니오. 너무 처먹어서 목이 갈한데다가 또 우유를 먹으면 어떻거자는 말이오? 흥, 뱃속에서 야단이 나겠수. 탐욕이 많으면 그런 법입니다. 저 먹을 만큼만 먹으면 배탈이 왜 난단 말이오? 그저 이건 들여라 들여라니 당신 그러다가는 장 위가 아주 결딴이 나서 나중엔 미음도 못 먹게 되오! 알긴 경치게 많이 알면서 왜 제 몸 돌아볼 줄만은 몰라? 그리고는 남더러는다고. 인제 오늘 밤중쯤 되면 당신이야말로 천벌 받는 것을 내가 볼걸."

강은 이렇게 빈정대었다.

이러는 동안에 또 저녁 먹을 때가 되었다. 저녁 한 때만은 사식을 먹는 정은 분명히 저녁을 굶어야 옳을 것이언만, 받아놓고 보니 하얀 밥과 섭산적과 자반고등어와 쇠꼬리 국과를 그냥 내어놓을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저녁을랑 좀 적게 자시지오?"

하는 내 말에 정은,

"내가 점심에 무얼 먹었다고 그러십니까? 왜 다들 나를 철없는 어린애로 아슈?"

하고 화를 내었다.

정은 저녁 차입을 다 먹고 점심에 남겼던 며루치도 다 핥아먹고, 그렇게도 그립던 물을 세 보시기나 벌컥벌컥 마셨다.

"시우신(취침)"하는 소리에 우리들은 다 자리에 누워서 잠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은 대단히 속이 거북한 모양이어서 두어 번이나 일어나서 소금을 먹고는 물을 마셨다. 그리고도 내 약봉지에 남은 소화약을 세 봉지나 달래서 다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