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 - "지하촌" 강경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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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오다가 돌아보니, 신작로가 뚜렷이 보이고, 어쩐지 마음이 수선해서 발길이 딱 붙는 것을 겨우 메어 놓았다. 동네까지 오니, 비에 젖은 밀짚 내 콜콜 올라오고, 변소 옆을 지나는지 거름 내가 코밑에 살살 기고 있다.

그는 어떤 집 처마 아래로 들어섰다. 몸이 오솔오솔 춥고 눈이 피로해서 바싹 벽으로 다가서서 옹그리고 앉았다. 그의 마을 앞에 홰나무가 보이고, 큰년이가 나타나고... 눈을 번쩍 떴다. 빗발 속에 날이 밝았는데, 먼 산이 보이고 또 지붕이 옹기종기 나타나고, 낙숫물 소리 요란하고. 그는 용기를 내어 일어나 둘러보았다.

그가 서 있는 이 집이란 돈 푼이나 조이 있는 집 같았다. 우선 벽이 회벽으로 되었고, 지붕은 시커먼 기와로 되었으며 널판자로 짠 문의 규모가 크고 또 주먹 같은 못이 툭툭 박힌 것을 보아 짐작할 수 있었다. 그의 얼었던 마음이 다소 풀리는 듯하였다. 흰 돌로 된 문패가 빗소리 속에 적적한데, 칠성이는 눈썹 끝이 희어지도록 이 문패를 바라보고 생각을 계속하였다.

"오냐, 오늘은 내게 무슨 재수가 들어 닿나 보다. 이 집에서 조반이나 톡톡히 얻어먹고 돈이나 쌀이나 큼직히 얻으리라..."

얼른 눈을 꾹 감아 보고,

"눈도 먼 체 할까. 그러면 더 불쌍하게 봐서 쌀이랑 돈을 더 줄지 모르지."

애써 눈을 감고 한참을 견디려 했으나, 눈 등이 간지럽고 속눈썹이 자꾸만 떨리고, 흰 문패가 가로 새로 나타나고, 못 견디어 눈을 뜨고 말았다. 어떡허나, 내 옷이 너무 회지, 단숨에 뛰어 나와서 흙물에 주저앉았다가 일어나 섰던 자리로 왔다. 아까보다 더 춥고 입술이 떨린다.

그는 대문 틈에 눈을 대고 안을 엿보려 할 때, 신발 소리가 절벅절벅 나므로, 날래 몸을 움직이어 비켜 섰다. 대문은 요란스런 소리를 내고 열렸다. 언제나처럼 칠성이는 머리를 푹 숙이고 어떤 사람의 시선을 거북스러이 느꼈다.

"웬 사람이야?"

굵직한 음성, 머리를 드니 사내는 눈이 길게 찢어졌고, 이 집의 고용인인 듯 옷이 캄캄하다.

"한 술 얻어 먹으러 왔슈."

"오늘은 첫 새벽부터야."

사내는 이렇게 지껄이고 나서 돌아서 들어간다. 이 집의 인심은 후하구나, 다른 집 같으면 으레 한두 번은 가라고 할 터인데 하고 어깨가 으쓱해서 안을 보았다. 올려다 보이는 퇴 위에 높직히 앉은 방은 사랑인 듯했고, 그 옆으로 조그만 대문이 좀 비딱해 보이고, 그리고 안 대청마루가 잠깐 보인다.

사랑채 왼편으로 죽 달려 이 문간에 와서 멈춘 방은 얼른 보아 창고인 듯 앞으로 밀짚 낟가리들이 태산같이 가리어 있다. 밀짚 대에서 빗방울이 다룽다룽 떨어진다. 약간 누른 빛을 띠었다. 뜰이 휘휘하게 넓은데 빗물이 골이 져서 흘러내린다. 저리로 들어가야 밥술이나 얻어먹을 텐데, 그는 빗발 속에 보이는 안 대문을 바라보고 서먹서먹한 발길을 옮겼다.

중 대문을 들어서자, 안 부엌으로부터 개 한 마리가 쏜살같이 달려나온다. 으르릉 하고 달려들므로 그는 개를 얼릴 양으로 주춤 물러서서 혀를 쩍쩍 채었다. 개는 날카로운 이를 내놓고 뛰어오르며 동냥자루를 확 물고 늘어진다. 그는 아찔하여 소리를 지르고 중문 밖으로 튀어나와, 사랑에 사람이 있나 살피며 개를 꾸짖어 줬으면 했으나 잠잠하였다.

개는 눈을 뒤집고서 앞발을 버티고 뛰어오른다. 칠성이는 동냥자루를 잎에 물고 몸을 굽혔다 폈다 하다가도 못 이겨서 비슬비슬 쫓겨 나왔다. 개는 여전히 따라 큰 대문에 와서는 칠성이가 용이히 움직이지 않으므로 으르릉 달려들어 잠뱅이 가랑이를 물고 늘어진다. 그는 악 소리를 자르고 달아나왔다. 아까 나왔던 사내가 안으로부터 나왔다.

"워리 워리."

개는 들은 체하지 않고 삐죽한 주둥이로 자꾸 짖었다. 저 놈의 개를 죽일 수가 있을까 하는 마음이 부쩍 일어 그는 휘 돌아서서 노려볼 때 사내는 손짓을 하여 개를 부른다. 그러니 개는 슬금슬금 물러나면서도 칠성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갑자기 속이 메식해지고 등어리가 오싹 하더니, 온몸이 열이 화끈 오른다.

개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고, 큰 대문만이 보기 싫게 버티고 있었다. 또 가볼까 하는 마음이 다소 머리를 드나, 그 개를 만날 것을 생각하니 진저리가 났다. 해서 단념하고 시죽시죽 걸었다. 비는 바람에 섞이어 모질게 갈겨 치고, 나무 흔들리는 소리, 도랑물 흐르는 소리에 귀가 탱탱할 지경이다.

붉은 물이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는 그 위엔 밀짚이 허옇게 떠 있고, 파랑새 같은 나뭇잎이 뱅글뱅글 떠돌아 간다. 비에 젖은 옷은 사정없이 몸에 착 달라붙고 지동치듯 부는 바람결에 숨이 흑흑 막혔다. 어쩔까 하고 둘러보았으나 집집이 문을 꼭 잠그고 아침 연기만 풀풀 피우고 있다. 혹 빈 집이나 방앗간 같은게 없나 했으나 눈에 뜨이지 않고 무거운 눈엔 그 개가 자꾸만 얼른거리고 또 뒤에 다우쳐 오는 것 같다.

개에게 찢긴 잠뱅이 가랑이가 걸음에 따라 너덜너덜 하여 그의 누런 다리 마디가 환히 들여다보이고 푹 눌러 쓴 밀짚모자에선 방울져 떨어지는 빗방울이 눈물같이 건건한 것을 입술에 느꼈다. 문득 그는 큰년의 옷감이 젖는구나 생각되자 소리를 내어 칵 울고 싶었다. 그는 우뚝 섰다.

들은 자욱하여 어디가 산인지 물인지 분간할 수 없고 곡식대들이 미친 듯이 날뛰는 그 속으로 무슨 큰 짐승이 웡웡 우는 듯한 그런 크고도 굵은 소리가 대지를 울린다. 지금 그는 빗발에 따라 마음만은 앞으로 앞으로 가고 싶은데, 발길이 딱 붙고 떨어지지 않는다. 바라보니 동네도 거반 지나온 셈이요, 앞으로 조그만 집이 두셋이 남아 있다.

그리로 발길을 돌렸으나 들에 미련이 남아 있는 듯 자주자주 멍하니 들을 바라보았다. 그가 개에게 쫓긴 것이 이번뿐이 아니요, 때로는 같은 사람한테도 학대와 모욕을 얼마든지 당하였건만, 오늘 일은 웬일인지 견딜 수 없는 분을 일으키게 된다.

"이 친구 왜 그러구 섰수."

그는 놀라 보니 자기는 어느덧 조그마한 집 앞에 펐고, 그 조그만 집은 연잣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머리를 넘석하여 내다보는 사내는 얼른 보아 사오십 되었겠고, 자기와 같은 불구자인 거지라는 것을 즉석에서 알았다. 사내는 쭝긋이 웃는다. 그는 이리 찾아오고도 저 사내를 보니 들어가고 싶지 않아 머뭇거리다가 하는 수없이 들어갔다. 쌀겨내 가득히 흐르는 그 속에 말똥 내도 훅훅 풍겼다.

"이리 오우, 저 옷이 젖어서 원..."

사내는 나무다리를 짚고 일어나서 깔고 앉았던 거적자리를 다시 펴고 자리를 내놓고 비켜 앉는다. 칠성이는 얼른 희뜩희뜩 세인 머리털과 수염을 보고 늙은 것이 내 동냥해온 것을 뺏으려나 하는 겁이 나고 싫어졌다.

"그 옷 땜에 춥겠수. 우선 내 헌 옷을 입고 벗어서 말리우."

사내는 그의 보따리를 뒤적뒤적 하더니,

"자 입소. 이리 오우."

칠성이는 돌아보았다. 시커먼 양복인데 군데군데 기운 것이다. 그 순간 어디서 좋은 옷 얻었는데, 나도 저런 게나 얻었으면 하면서 이상한 감정에 싸여 사내의 웃는 눈을 정면으로 보았을 때 동냥자루나 뺏을 사람 같지 않았다. 그는 머리를 숙이고 소매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보았다. 사나이는 나무다리를 짚고 이리로 온다.

"왜 이러구 섰수. 자 입으시우."

"아 아니유."

칠성이는 성큼 물러서서 양복 저고리를 보았다. 난 생전 입어 보지 못한 그 옷 앞에 어쩐지 가슴까지 두근거린다.

"허! 그 친구 고집 대단한데, 그럼 이리 와 앉기나 해유."

사내는 그의 손을 끌고 거적자리로 와서 앉히운다. 눈결에 사내의 뭉퉁한 다리를 보고 못 본 것처럼 하였다.

"아침 자셨수."

칠성이는 이 자가 내 동냥자루에 아침 얻어온 줄을 알고 이러는가 하며, 힐끔 동냥자루를 보았다. 거기에서도 물이 떨어지고 있다.

"아니유."

사내는 잠잠하였다가,

"안되었구려. 뭘 좀 먹어야 할 터인데..."

사내는 또 무슨 생각을 하듯 하더니, 그의 보따리를 뒤진다.

"자, 이것 적지만 자시유."

신문지에 싼 것을 내들어 펴 보인다. 그 종이엔 노란 조밥이 고실고실 말라가고 있다. 밥을 보니 구미가 버쩍 당기어 부지중에 손을 내밀었으나, 손이 말을 안 듣고 떨리어서 흠칫 하였다. 사내는 이 눈치를 채었음인지 종이를 그의 입 가까이 갖다대고,

"적어 안되었수."

부끄럼이 눈썹 끝에 일어 칠성이는 눈을 내려뜨고 애꿎이 코를 들여마시며 종이를 무릎에 놓고 입을 대고 핥아먹었다. 신문지 내가 이사이에 나들고 약간 쉬인 듯한 밥알이 씹을수록 고소하였다. 입맛을 다실 때마다 좀더 있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이 혀끝에 날름거리고 사내 편을 향한 귓바퀴가 어쩐지 가려운 듯 따가움을 느꼈다.

"저 것이 원..."

사내의 이러한 말을 들으며 신문지에서 입을 메고 히 하고 웃어 보이었다. 사내도 따라 웃고 무심히 칠성의 다리를 보았다.

"어디 다쳤나보 ! 피가 나우."

허리를 굽히어 들여다본다. 칠성은 얼른 아픔을 느끼고 들여다보니, 잠뱅이 가랑이에 피가 빨갛게 묻었고, 다리엔 방금 선혈이 흐르고 있다. 별안간 속이 무쭉해서 그는 다리를 움츠리고 머리를 들었다. 바람결에 개 비린내 같은 것이 흠씬 끼친다.

"개 개한테 그리 되었지우."

"아, 그 기와집 가셨수... 그 개를 길러도 흉악한 개를 기르거든 흥! 한 놈이 아니우, 어디 이리 내놓우, 개에게 물린 것이 심상히 여길 것이 못되우."

사내는 그의 다리를 잡아당기었다. 그는 얼른 다리를 치우면서도 코 안이 사 해서 몇 번 코를 움직일 때 뜻하지 않은 눈물이 주루루 흘러내린다. 사나이는 이 눈치를 채고 허허 웃으면서, 그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이 친구 우오. 울기로 하자면... 허허 울어선 못 쓰오."

칠성이는 머리를 번쩍 들어 사내를 바라보니, 눈에 분노의 빛이 은은하였다. 다시 다리로 시선이 옮겨질 때, 가슴이 턱 막히고 목에 무엇이 가로질리는 것 같아, 시름없이 머리를 숙이고 무심히 부드러운 먼지를 쥐어 상처에 발랐다.

"아이고! 먼지를 바르면 되우?"

사내는 칠성의 손을 꽉 붙들었다. 칠성이는 어린애 같이 히 웃고 나서,

"이러면 나유."

"아 원, 그런 일 다시는 하지 마우. 약이 없으면 말지, 그런 일하면 되우? 더 성해서 앓게 되우."

칠성이는 약간 무안해서 다리를 움츠리고 밖을 바라보았다. 사내는 또다시 무슨 생각에 깊이 잠기는 것 같다. 바람이 비를 안고 싸싸 밀려들고, 천정에 수없는 거미줄은 끊어져 연기같이 나부꼈다. 바라 뵈는 버드나무의 잎은 팔팔 떨고, 아래로 시뻘건 물이 좔좔 소리를 내고 흐른다. 어깨 위가 어찔해서 돌아보면 큰 매매이 쌀겨를 뽀얗게 쓰소서 얼음 같은 서늘한 기를 품품 피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