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 - "원고료 이백 원" 강경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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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번 너의 편지는 반갑게 받아 읽었다. 그리고 약해졌던 너의 몸도 다소 튼튼해짐을 알았다. 기쁘다. 무어니 무어니 해야 건강밖에 더 있느냐?

야, 졸업기를 앞둔 너의 기쁨보다는 괴로움이 앞서고, 희망보다도 낙망을 하게 된다고? 오냐 네 환경이 그러하니만큼 응당 그러하리라. 그러나 너는 그 괴로움과 낙망 가운데서 단연히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기쁘고 희망에 불타는 새로운 길을 발견해야 한다.

야. 네가 물은 바 이 언니의 연애관 내지 결혼관은 간단하게 표현할 만한 지식이 아직도 나는 부족하구나. 그러니 나는 요새 내가 지내는 생활 전부와 그 생활로부터 일어나는 나의 감정 적부를 아무 꾸밀 줄 모르는 서투른 문장으로 적어 놀 터이니 현명한 너는 거기서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하여 다오.

야, 내가 요새 신문에 장편소설을 연재하여 원고료로 이백여 원을 받은 것은 너도 잘 알지. 그것이 내 일생을 통하여 처음으로 많이 가져보는 돈이구나. 그러니 내 머리는 갑자기 활기를 얻어 온갖 공상을 다하게 되더구나.

야, 너도 짐작하는지 모르겠다마는! 나는 어려서부터 순조롭지 못한 가정에서 자랐고 또 커서까지라도 순경에 처하지 못한 나는 그나마 쥐꼬리만큼 배운 이 지식까지라도 우리 형부의 덕이었니라.

그러니 어려서부터 명일 빔 한번 색 들여 못 입어봤으며 먹는 것이란 언제나 조밥이었구나. 그리고 학교에 다니면서도 맘대로 학용품을 어디 써보았겠니. 학기초마다 책을 못 사서 울고 울다가는 겨우 남의 낡은 책을 얻어 가졌으며 종이와 붓이 없어 나의 조그만 가슴은 그 몇 번이나 달막거리었는지 모른다.

야, 나는 아직도 잘 기억한다. 내가 학교 일년급 때 일이다. 내일 처음 학기 시험을 치겠는데 종이 붓이 없구나. 그래서 생각다 못해서 나는 옆의 동무의 것을 훔치었다가 선생님한테 얼마나 꾸지람을 받았겠니. 그리고 애들한테서는 애! 도적년 도적년 하는 놀림을 얼마나 받았겠니.

더구나 선생님은 그 큰 눈을 부라리면서 놀 시간에도 나가 놀지 못하게 하고 벌을 세우지 않겠니. 나는 두 손을 벌리고 유리창 곁에 우두커니 서 있었구나. 동무들은 운동장에서 눈사람을 만들어 놓고 손뼉을 치며 좋아하지 않겠니. 나는 벌을 서면서도 눈사람의 그 입과 그 눈이 우스워서 킥하고 웃다가 또 울다가 하였다.

야, 어려서는 천진하니까 남의 것을 훔칠 생각을 했지만 소위 중학교까지 오게 된 나는 아무리 바쁘더라도 그러한 맘은 먹지 못하였다. 형부한테서 학비로 오는 돈은 겨우 식비와 월사금밖에는 못 물겠더구나. 어떤 때는 월사금도 못 물어서 머리를 들고 선생님을 바로 보지를 못했구나.

그러니 나는 자연히 기운이 죽고 바보같이 되더라. 따라서 친한 동무 한 사람 가져보지 못하였다. 이렇게 외로운 까닭에 하느님을 더 의지하게 되었으니 나는 밤마다 기숙사 강당에 들어가서 목을 놓고 울면서 기도하였다. 그러나 그 괴로움은 없어지지 않고 날마다 달마다 자라만 가두구나.

동무들은 양산을 가진다, 세루 치마저고리를 입는다, 털목도리, 자켓을 짠다, 시계를 가진다, 지금 생각하면 그 모든 것이 우습게 생각되지마는 그때는 왜 그리도 부러운지 눈물이 날 만큼 부럽더구나. 그 폭신폭신한 털실로 목도리를 짜는 동무를 보면 나도 모르게 그 실을 만져보다가는 앞서는 것이 눈물이두구나.

여학교 시대가 아니고서는 맛보지 못하는 것이 이 털실의 맛! 어떤 때 남편은 당신은 왜 자켓 하나 짤 줄 모루? 하고 쳐다볼 때마다 나는 문득 여학교 시절을 회상하며 동무가 가진 털실을 만지며 가히 짜르르하게 느끼던 그 감정을 다시 한번 느끼곤 하였다.

야, 어느 여름인데 내일같이 방학을 하고 고향으로 떠날 터인데 동무들은 떠날 준비에 바쁘더구나. 그때는 인조견이 나지 않았을 때이다. 모두가 쟁친 모시치마 적삼을 잠자리 날개처럼 가볍게 해 입고 흰 양산 검은 양산을 제각기 사더구나. 그때에 나는 어째야 좋을지 모르겠더라.

무엇보다도 양산이 가지고 싶어 영 죽겠더구나. 지금은 여염집 부인들도 양산을 가지지만 그때야말로 여학생이 아니고서는 양산을 못 가지는 줄 알았다. 그러니 양산이야말로 무언중에 여학생을 말해주는 무슨 표인 것 같이 생각되었니라.

철없는 내 맘은 양산을 못 가지면 고향에도 가고 싶지를 않더구나. 그래서 자꾸 울지만 않았겠니. 한 방에 있는 동무 하나가 이 눈치를 채었음인지 혹은 나를 놀리느라고 그랬는지는 모르나 대가 부러진 양산 하나를 어디서 갖다주더구나. 나는 그만 기뻤다. 그러나 어쩐지 화끈 달며 냉큼 그 양산을 가질 수가 없더구나.

그래서 새침하고 앉았노라니 동무는 킥 웃으며 나가더구나. 그 동무가 나가자마자 나는 얼른 양산을 쥐고 벌리어보니 하나도 성한 곳이 없더라. 그때 나는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울분과 슬픔이 목이 막히도록 치받치더구나. 그러나 나는 그 양산을 버리지는 못하였다.

야, 나는 너무나 딴 길로 달아나는 듯 싶다. 이만하면 나의 과거생활을 너는 짐작할 터이지. ...나의 현재를 말하려니 말하기 싫은 과거까지 들추어놓았다. 그런데 야, 아까 말한 그 원고료가 오기 전에 나는 밤 오래도록 잠을 못 이루고 그 돈으로 무엇을 할까? 하고 생각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말이지만 우선 겨울이니 털외투나 하고 목도리, 구두, 내 앞니가 너무 새가 넓으니 가늘게 금니나 하고 가늘게 금반지나 시계나... 아니 남편이 뭐랄지 모르지 그래도 뭘 내가 벌어서 내 해 가지는데야 제가 입이 열이니 무슨 말을 한담.

이번 기회에 못하면 나는 금시계 하나도 못 가지게 - 눈 딱 감고 한다. 그리고 남편의 양복이나 한 벌 해줘야지, 양복이 그 꼴이니. 나는 이렇게 깡그리 생각해두었구나. 그런데 어느 날 원고료가 내 손에 쥐어졌구나. 야, 남편과 나는 어쩔 줄 모르게 기뻐했다.

그날 밤 나는 유난히 등불을 바라보면서 "이 돈으로 뭘 하는 것이 좋우?"

남편의 말을 들어보기 위하여 나는 이렇게 물었구나. 남편은 묵묵히 앉았다가 혼자 하는 말처럼

"거참, 우리 같은 형편에는 돈이 없는 것이 오히려 맘 편하거든... 글쎄 이와 생긴 것이니 써야지. 우선 제일 급한 것이 웅호 동무를 입원시키는 게지..."

나는 이같이 뜻밖의 말에 앞이 아득해지며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더구나. 그러고 나를 쳐다보는 남편의 그 얼굴이 금시로 개 모양 같고 또 그 눈이 예전 소 눈깔 같더구나.

"그러고 다음으로는 홍식의 부인이지. 이 겨울 동안은 우리가 돌봐야지 어쩌겠우?"

나는 이 이상 남편의 말을 듣고 싶지 않더라. 그래서 머리를 돌려 저편 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구나. 물론 남편의 동지인 웅호라든지 혹은 같은 친구인 홍식의 부인이라든지를 나 역시 불쌍하게 생각하지 않는 바는 아니다.

그래서 이 돈이 오기 전까지는 우리의 힘 미치는 데까지는 도와주고 싶은 맘까지 가졌지만 그러나 막상 내 손에 이백여 원이라는 돈을 쥐고 나니 그때의 그 생각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더구나. 어쩔 수 없는 나의 감정이더라. 남편은 대답이 없는 나를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약간 거센 음성으로

"그래. 당신은 그 돈을 어떻게 썼으면 좋을 듯 싶소?"

그 물음에 나는 혀를 깨물고 참았던 눈물이 샘솟듯 쏟아지더구나. 그 순간 남편이야말로 돌이나 깎아논 듯 그렇게도 답답하고 안타깝게 내 눈에 비치어지더구나.

무엇보다도 제가 결혼 당시에 있어서도 남들이 다하는 결혼 반지 하나 못해 주었고 구두 한 켤레 못 사주지 않았겠니. 물론 그것이야 제가 돈이 없어서 그리한 것이니 내가 그만한 것은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돈이 생긴 오늘에 그것도 남편이 번 것도 아니오 내 손으로 번 돈을 가지고 평생의 원이던 반지나 혹은 구두를 선선히 해 신으라는 것이 떳떳한 일이 아니겠니. 그런데 이 등신 같은 사내는 그런 것은 염두에도 먹지 않은 모양이더라. 나는 이것이 무엇보다도 원망스러웠다.

그러고 지금 신는 구두도 몇 해 전에 내가 중이염으로 서울 갔을 때 남편의 친구인 김경호가 그의 아내가 신다가 벗어 논 구두를 자꾸만 신으라구 하더구나. 내 신발이 오죽잖아야 그리 했겠니. 그때 나의 불쾌함이란 말할 수 없었다. 사람의 맘은 일반이지 낸들 남이 신다 벗어 논 것을 신고 싶겠니.

그러나 내 신발을 굽어볼 때는 차마 딱 잘라 거절할 수는 없더구나. 그래서 그 구두를 둘러보니 구멍 난 곳은 없더라. 그래서 약간 신고 싶은 맘이 있지만 남편이 알면 뭐라고 할지 몰라 그 다음으로 남편에게 편지를 했구나. 며칠 후에 남편에게서는 승낙의 편지가 왔겠지. 그래서 나는 그 구두를 신게 되지 않았겠니.

그러나 항상 그 구두를 볼 때마다 나는 불쾌한 맘이 사라지지 않더구나. 그런데 오늘밤 새삼스레이 그 구두를 빌어 신던 그때의 감정이 목구멍까지 웅웅 터지는구나. 나는 마침내 어린애같이 입을 벌이고 울지 않았겠니. 남편은 벌떡 일어나며 욍 소리가 나도록 나의 뺨을 후려치더구나. 가뜩이나 울분에 못 이겨 울던 나는 악이 있는 대로 쓸어나더구나.

"왜 때려 날 왜 때려!"

나는 달려들지 않았겠니. 남편은 호랑이 눈 같은 눈을 번쩍이며 재차 달려들더니 나의 머리끄댕이를 치는 바람에 등불까지 왱그렁 쨍하고 깨지더구나. 따라서 왼 방 안에 석유 내가 확 뿜기누나.

"죽여라. 죽여라."

나는 목이 메어 소리쳤다. 이제야말로 이 사나이와는 마지막이다 - 싶더라. 남편은 씨근벌떡이며

"응. 너 따위는 백 번 죽여 싸다. 내 네 맘을 모르는 줄 아니. 흥 돈푼이나 생기니까 남편을 남편같이 안 알구 에이 치사한 년 가라! 그 돈 다 가지고 내일 네 집으로 가. 너 같은 치사한 년과는 내 못살아. 왼 여호 같은 년... 너도 요새 소위 모던껄이라는 두리홰눙년이 되고 싶은 게구냐.

아 일류 문인으로서 그리해야 하는 게지. 허허 난 그런 일류 문인의 사내 될 자격은 못 가졌다. 머리를 지지고 볶고, 상판에 밀가루 칠을 하구 금시계에 금강석반지에 털외투를 입고 입으로만 아! 무산자여 하고 부르짖는 그런 문인이 되고 싶단 말이지. 당장 나가라!"

내 손을 잡아 끌어내누나. 나는 문 밖으로 쫓기어났구나.

야. 북국의 바람이 얼마나 찬 것은 말할 수 없다. 내가 여기 온 지 사개 성상을 맞이했건만 그날 밤 같은 그러한 매서운 바람은 맛보지 못하였다. 왼 세상이 얼음덩이로 된 듯하더구나. 쳐다보기만 해도 눈등이 차오르는 달은 중천에 뚜렷한데 매서운 바람결에 가루눈이 씽씽 날리더구나. 마치 예리한 칼끝으로 내 피부를 찌르는 듯 내 몸에 부딪치는 눈발이 그렇게 따갑구나.

나는 팔짱을 찌르고 우두커니 눈 위에서 있었다. 그때에 나의 머리란 너무나 많은 생각으로 터질 듯하더구나. 어떻게 하나? 나는 이 여러 가지 생각 중에서 어떤 결정적 태도를 취하려고 이렇게 중얼거리며 머릿속에 돌아가는 생각을 한 가지씩 붙잡어내었다.

제일 먼저 내달아오는 것이 저 사나이와는 이젠 못 사는 게다 금을 줘도 못 사는 게다. 그러면 나는 어떻거나. 고향으로 가나? 고향... 저년 또 살았나, 글쎄 그렇지. 며칠 살겠기 저런 홰눙년하고 비웃는 고향사람들의 얼굴과 어머니의 안타까와 하는 모양! 나는 흠칫 하였다.

그러면 서울로 가서 어느 신문사나 잡지사에 취직을 해? 종래의 여기자들의 염문만 퍼진 것을 보아 나 역시 별다른 인간이 못된다는 것을 깨닫자 그 말로는 타락할 것밖에 없는 듯...

그러면 어디로 어떻거나. 동경으로 가서 공부나 좀 해봐. 학비는 무엇이 대구 내 처지로서는 공부가 아니라 타락 공부가 될 것 같다. 나는 이러한 결론을 얻을 때 어쩐지 이 세상에서 버림을 받은 듯 나는 여기를 가나 저기를 가나 누가 반가이 맞받아줄 사람이라구는 없는 듯하더구나. 그나마 호랑이같이 씨근거리며 저 방안에 앉아 있을 저 사나이가 아니면 이 손을 잡아줄 사람이 없는 듯하구나.

야, 이것이 애정일까? 무엇일까 나는 그때 또 다시 더운 눈물을 푹푹 쏟았다. 동시에 그 호랑이 같은 사나이가 넙쩍넙쩍 지껄이던 말을 문득 생각하였다. 그러고 홍식의 부인이며 그 어린것이 헐벗은 모양, 또는 뼈만 남은 웅호의 얼굴이 무시무시하리만큼 떠오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