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 - "유치장에서 만난 사나이" 김사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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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은 오늘밤과 같이 달이 환히 비치고 있지는 않았다. 배에서 내렸을 때 부산 부두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해질 무렵 기차가 추풍령 협곡에 다다랐을 때는 태백산맥에 부딪친 대륙의 태풍이 노호를 하고 있었다. 주위 일변에는 눈보라가 치며 하늘은 검푸르게 내려앉고 소나무와 섭나무의 숲이 바위 잔등에서 떨고 있었다. 열차는 골짜기를 지나서는 어둠이 벌어지는 낙막한 전야로 돌진하였다.

헬 수 없이 많은 까마귀들이 울면서 하늘 높이 떠오른다. 그때부터 실로 말하자면 음산한 밤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기차 속은 만주 광야로 이주하는 이민군들로 가득 찼었다. 그들은 짐짝과 같이 웅크리고 쭈그리고 쓰러지고 혹은 넘어지고 모로 눕기도 하고 자리에서 비어져 나온 사람은 통로에서 타구를 안은 채 세상 모르게 잠들고 있다. 모두들 무던히 피곤한 듯 침침히 잠이 들어 누구 하나 까딱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때때로 어린애들이 킹킹 보챈다. 여기저기서 부인네들은 구역질을 하고.

끈으로 꿰어 돌더구에 매단 바가지는 서로 마주치며 달가락달가락 소리를 내고 있다.

나는 그 한 모퉁이에 움츠리고 있었다. 내 아무 것도 생각지 않으려 과거의 일은 과거대로 묻어 버리고 말리라고 눈을 감은 채였다. 그러나 나는 절망하고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는 내 체내에 새 생명의 피와 힘이 용솟음치는 것을 느끼었다.

그리고 심지어는 그 저주받을 풍수해로 말미암아 논, 밭, 집을 몽땅 물에 띄워 버린 이 백성들이 이제부터 새로운 광명을 찾아 멀리 광야로 출발함을 볼 때 나는 더욱더욱 자기도 용기를 내어 갱생치 않으면 안 되겠다, 새로운 생명을 다시금 찾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맹세하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혼자 흥분한 나머지 차츰 체열이 생기어 거진 상기까지 할 지경이 되었다.

그 사이에도 이 이민 열차는 쉴새없이 기적을 울리면서 맥진하고 있었다. 바로 이 기차 모양으로 연결되며 또 그 지방의 이민군들이 우르르 오르곤 한다. 너무나 소연한 바람에 나는 눈을 뜨고 창 밖을 내다보았다. 아직도 펄펄 눈은 내리고 있다.

그 정거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수백 명의 이민군이 꾸러미와 보따리를 안기도 하고 지기도 하고서 마치 파도와 같이 뒤 차량으로 비명을 지르며 몰려가는 것이다. 그게 바로 난민의 무리와도 같이 보인다. 그러는데 어느 새인지 우리들의 차량으로도 수십 명의 이민들이 들어와 보려고 얼굴을 들며 밀었다가 무엇인지 지껄이면서 황망히 다시금 밖으로 물러나간다.

그러나 그는 그 뒤로 꺼먼 외투에 흰 명주 마후라를 걸친 중키의 한 신사가 비틀비틀거리며 들어서는 것을 보았다. 그는 문 어귀에 멍하니 한참 서서 차 속을 둘러보는 것이다. 아주 퍽 괴로운 듯이 몇 번이고 양미간을 찌푸리며 두터운 입술을 비죽인다. 얼굴은 뻘겋게 달고 있다. 이마에는 서너 줄의 주름이 가로 접히었다.

숨이 몹시 가쁜 듯, 몹시 술에 취한 게로구나 나는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나는 저도 모르게 펄쩍 놀라며 일떠섰던 것이다.

그도 나를 알아차린 듯 갑자기 눈을 휘둥그렇게 뜨더니만 히죽 웃는다. 그 웃는 얼굴을 보고는 나도 무엇이라 소리를 쳤다. 그것은 언제인가 A서 특고실에서 내 앞에 나타나 히죽이 웃던 왕백작임에 틀림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엎어질 듯 비틀거리며 가까이 오더니만 덥쩍 나한테로 달겨붙는다. 술 냄새가 휙 코를 찌른다.

"동경의 동지!"

이렇게 그는 아무 거리낌없이 다짜로 부르짖었다. 술기운 때문에 이전보다도 더욱 혀가 돌아가지 않는 국어를 쓴다.

"응, 이게 웬일인가. 대체 자네는 그 후 무사했는가. 얼굴빛이 아주 나쁘구먼."

"어서 여기라도 좀 앉게나."

하고 나는 그에게 자리를 내주려고 일어났다. 그런즉 그는 갑자기 무엇에 놀란 것처럼 괜찮아 괜찮아 하며 손을 내저어 가며 뒷걸음을 치더니 그냥 그대로 통로에 털석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는 마냥 떠들어대는 것이다.

"아니 나는 여기가 더 좋을세, 여기가. 응 그런데 여보게, 동경의 동지, 나는 자네가 송국될 때 근심하였다네. 아주 크게 걱정을 했었다네. 저것이 처음이 되어 금시에 헤타바루 하지나 않을까 하구 응."

"고마울세. 그러나 자네 지금 좀 쉬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하며 나는 그를 타이르듯이 조용히 달래었다. 그런즉 그는 두 말 안짝으로 유순히 무르팍을 모아 세우고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는 괴로운 듯이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때 기차가 굉음을 지르며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폼과 차 속으로부터 일제히 통곡과 환성이 천동하듯 일어났다. 서로 멀리 이별할 순간이 되자 모두 울음통이 터진 것이다. 왕백작은 뜨거운 물이라도 끼얹힌 듯이 머리를 획 쳐들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무서운 공포에 싸인 것처럼 손발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하나 그 희멀게한 눈 속에는 비웃는 듯한 음흉스런 기쁨의 빛이 서리고 있었다. 그는 두서너 번 핏게질을 하더니,

"응 무슨 소리야, 이게 무슨 소리야!"

"그러면 그렇지, 그러면 그렇지."

하며 그는 아주 미치기라도 한 사람 모양으로 에헤헤 에헤헤 웃어대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이상하게도 왕백작은 소리를 내어 괭괭 체울기 시작한 것이다.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놀라 눈을 뜨고 말소리를 죽이고서 망연한 태도로 이 이상한 왕백작을 굽어보기 시작하였다. 짐짓 기차도 플랫폼을 지나고 나니 차 속도 차츰 조용해지었다. 어느덧 이아근부터는 눈보라도 개고 멀리 첩첩 쌓인 산이며 지질펀하니 누운 전야가 백은색에 쌓이어 우스름한 달빛 아래 흘러 달아나 버린다.

다시 차 속은 아주 고요해졌다. 그러나 왕백작의 울음소리는 점점 더 높아 갈 뿐으로 어떻게 손을 대려야 댈 수가 없었다. 그는 다시 발작이라도 일어난 듯 낯을 치켜들더니 이번에는 대번 조선말로 또 떠들기 시작하였다.

"나두 통곡을 하구 싶어요. 큰 소리를 지르며 통곡을 하고 싶어. 나는 울기를 좋아하는 거야, 울기를. 그래서 나는 늘 이 이민열차에 오르군 하겠지."

거기서 그는 갑자기 울음을 뚝 그치고 목소리를 낮추더니 얼굴 근육에 몹쓸 경련을 일으키었다. 나는 이 광열적인 사내가 우리들도 흔히 빠지곤 하는 절망적인 고독감에 사로잡힌 것을 알았다.

그렇다. 그는 늘 절대의 고독 속에 묻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또 무서운 절망임에 틀림없다. 나는 그가 빨리 진정되어 주기만 바랐다. 그러나 그의 턱아리는 차츰 더 푸들푸들 떨리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비명과 같은 소리를 빽 지르더니 그는 뒤로 움쳐든다.

"네 네놈은... 날 보구 복수를 하려는 게지."

잠깐 동안 음참한 침묵이 흘렀다. 그는 입을 멍하니 열고서 내 얼굴을 한참 동안이나 쳐다본다. 나는 공연히 가슴이 떨리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 이놈 저놈 할 것 없이 나에게 복수를 하려 드는구나. 네놈두 그렇지? 그래 그렇지 않단 말이냐? 저것 보게, 차츰 얼굴빛이 달라져 간다. 에구 달라져 가누나."

"무슨 환영을 쫓고 있는가 부네. 그리고 그것에 또 자네가 쫓겨다니구 있는 걸세."

하고 나는 측은한 낯빛으로 웃어 보이었다. 사실 나는 그를 어떻게 해석함이 옳은지 몰랐다. 하여튼 이것을 병이라고 말한다면 확실히 그것은 유치장에 있을 때보다 더 악화된 모양 같았다. 나는 위로하듯이 덧붙여서 말하였다.

"자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나는 통 종을 못 잡겠네."

"네놈은 시침을 떼려 드느냐. 응, 복수를 해보고 싶지 않으냐 말이다, 내게. 응, 나에게, 에헤헤 에헤헤."

"대체 어떻게 된 셈인가."

하고 나는 조금 캐듯이 물었다.

"아니 그 그...."

그는 다시 괴로운 소리를 내며 신음하였다.

"나는 아아 지금 당장 내 자신으로부터도 복수를 받고 있는 터이야. 목줄을 졸라매구 있는 터이야. 희망두 없구 즐거움두 없구 슬픔도 없구 그리구 또 목적조차 없구... 아아 나는 이 이민열차에 탔을 때만이 행복인 걸 어떡허나. 나는 그들과 같이 울 수가 있구 부르짖을 수가 있어."

"하나 이 사람들은 희망을 붙들고 가는 것이지, 슬퍼하러 가는 것은 아닐 텐데."

"그게야 아무러문 어때. 나는 그냥 그들과 같은 차로 같은 방향으로 간다는 것만이 기뻐 죽겠어. 그리구 같이 울기두 하구 부르짖는 것두 함께 한다는 것이. 그러나 어떡허까 나는 어떡허까, 이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서면 나는 혼자서 되짚어 오지 않으면 안 되니 나는 그때 생각을 하면...."

하고 그는 또 쿨적쿨적 울기 시작하였다. 나는 더욱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나 어쩐지 그의 일이 뜻없이 측은히 생각되어 나도 덩달아 같이 슬퍼하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냉정히 생각한다면 이런 불쌍한 사람이 어디 있을 것인가. 이런 사람이야말로 차츰 멸망할 인간이라고 할 것이다.

"그만두게, 이것이 무슨 짓이람."

그러자 그는 움칠하더니 푸들푸들 다시 몸을 떨기 시작하였다. 눈을 휘황하게 뜨고 턱아리가 떡떡 마주쳐 일어서려고 애를 쓴다. 나는 잠시 망연하여졌다. 그 얼굴은 사상 을 띠고 몸은 벅벅 극매인다. 마치 죽어 가는 사람이 천국을 거부당한 것처럼. 최후의 기쁨을 빼앗긴 것처럼. 그리고 팔을 휘저으며,

"이눔 날드러 가만있으라구."

하고 고함을 벽력같이 지르니 그만 기운이 빠져 그 자리에 넌지시 엉덩이를 박고 넘어졌다. 좀 있더니 입으로 침을 흘리며 그리고 얼굴과 함께 상반신을 그냥 철석 통로 바닥에 파묻어 버렸다. 얼굴은 흙투성이가 되었다. 나는 잔인스럽게도 그만 잘 되었다, 이제는 잠이 들 것이라고.

"그러나 그때 잘되었다고 생각한 것에 대하여 나는 아직도 가슴이 데저린 듯한 느낌을 가지는 것이다. 그 일이 이 이 년래 나를 얼마나 심한 고문에 걸고 있는 것일까."

하며 신문기자는 비창 한 안색을 지었다.

"술을 좀더 부어 주게, 응. 술을 좀더 부어 주게나."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축산회사원은 뒤가 궁금한 듯이 재촉하였다.

"글쎄 가만있게나. 그런데 기차는 좀 있으면 대전에 닿게 되었더란 말이야. 군들도 알지만 나는 대전서 호남선으로 차를 바꿔 타야지 않는가. 그래 그때 나는 내릴 준비를 하면서 생각하였네. 자 작별을 하기 위해 이 왕백작을 깨워야 옳은가 그냥 두는 게 옳은가. 그는 정신 모르고 그냥 쓰러져 누워 있네. 그래 구태여 깨울 필요가 없다구 생각하였지."

그러자 거의 가까워진 모양으로 기적 소리가 울렸다. 그래 나는 양손에 트렁크를 들고 일어서서 나오려고 했다. 그런데 기차가 몹시 흔들리기 때문에 그 통에 나는 넘어질 뻔하며 그만 잘못되어 왕백작의 잔등 위에 엎드러졌다. 백작은 아주 펄저덕 쓰러지고 말았다.

나는 혼이 나서 버둥거리며 일어섰다. 하나 그는 통로 바닥에 쓰러진 채 몸을 꼼짝도 않는다. 이리하여 더욱 나는 그에게 인사를 못 하게끔 되었다. 그때 벌써 플랫폼의 등불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를 깨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